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장 김창수 (문단 편집) == 스토리 == ||'''“나는 그 날 짐승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다”''' 1896년 황해도 치하포, [[치하포 사건|청년 김창수가 일본인을 죽이고]] 체포된다. 그는 재판장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고 소리치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소에 수감된다. 일본의 편에 선 감옥소장 강형식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김창수를 갖은 고문으로 괴롭히고[* 정작 김창수가 치하포 사건으로 받은 고문은 해주부 관찰사 민영철에게 당한 주리틀기뿐이다. 더구나 민영철은 아관파천 이후 중용받은 근왕파 관료였다. 이후 김창수가 인천감리서로 이송되었을 때는 경무관 김윤정의 비호와 인천 현지 [[투전]]판 두목 김주경의 비호로 감옥 내에서 대접이 좋았다. 이러니 이 영화는 백범일지의 내용조차 무시하고 아예 새로 창작한 픽션이나 다름없다.] 죄수들마저 김창수에게 등을 돌린다. 하지만 그곳은 그에게만 지옥이 아니었다. 못 배우고, 못 가졌다는 이유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조선인들을 보며 김창수는 조금씩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변화를 꿈꾸기 시작한다. 천하고 평범한 청년이 대장 김창수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625일의 이야기!|| 백범 [[김구]]의 청년 시절을 모티브로 한 시대극 영화이다. 김창수는 [[백범 김구]](1876 ~ 1949)의 소년 시절 이름으로 이 영화에서는 백범의 일생 중 청년 시절인 1896년도를 배경으로 그려냈다. 김구의 일생을 소재를 다룬 영화는 다수 나온 적이 있지만 그중에서 그의 청년 시절을 중심으로 그린 영화는 극히 이례적인 편이다. 영화의 내용은 김구가 청년이었던 시절인 1896년 김창수라 불렸던 시절, 20살의 나이로 황해도 안악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하면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던 내용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 같은 내용은 이미 백범을 소재로 한 유사 영화나 드라마에도 나와있지만[* 이와 유사하게 1960년대에 제작한 상해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은 백범의 일생 중 중년기 및 상해임시정부 시절을 중심으로 그려내었던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와는 동일하면서 다르게 백범의 청년 시절 중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죄로 감옥살이를 한 내용을 중심으로 그렸다. 사실 치하포 살인사건과 복역사실 외에 영화의 모든 줄거리, 인물, 사건이 모두 상상의 산물이다. 조선 임금이 이야기의 반전을 만드는 것 역시 백범 일지에서 더 확장된 허구적 장면이다. 당연히 옥중 반란이나 사건들도 실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로 스토리 거의 전반을 차지하는 노역생활의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상상이다. 포털의 일반 리뷰에 나오듯이 이 영화를 실제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백범 김구 선생의 영웅적 면모를 왜곡시킬 수 있다. 실존 위인의 다룬 가상역사극의 위험성은 그게 긍정적 영웅화라도 '''"[[나랏말싸미]]"''' 같은 역사 왜곡[* 이 영화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급의 가벼운 사건 해결이나 훓듯이 넘기는 억지 에피소드는 사실 '''"나랏말싸미"'''만큼 위험하다.]으로 번질 수 있다. 실제로 백범은 19세의 나이에 동학도에 입도한 적이 있었으며 당시 나이가 어리다고 하여서 '''애기접주'''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